• 태백 건의령 스마트 양계장 갈등이 던진 님비(NIMBY)의 거울… 행정구역에 갇힌 상생의 민낯
  • 혜택은 한쪽에, 피해는 이웃에… ‘경계지역 입지 갈등’이 반복되는 구조적 모순
  • 비용과 이익 나누는 ‘광역 상생 거버넌스’와 사전 합의제 구축해야 함께 살아남는다

바람이 넘나들고 물길이 이어지는 백두대간 고갯마루에 보이지 않는 두터운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최근 태백시 건의령 일대(상사미동)에 추진되는 대규모 스마트 산란계(양계) 축산단지 조성을 둘러싸고 태백시와 인접한 삼척시가 정면충돌하고 있다. 농식품부 공모 선정을 계기로 폐광 이후 대체산업과 일자리가 절박한 태백시의 유치 추진에 맞서, 바로 산자락 아래 바람길과 오십천 상류를 마주한 삼척 도계와 하장면 주민들은 악취와 환경오염, 생존권 침해를 호소하며 거리로 나섰다.

흔히 이를 두고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님비(NIMBY) 현상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갈등을 단순히 지역 이기주의라는 낡은 프레임으로 재단해 버리는 것은 손쉬운 비판일 뿐,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는 일이다. 악취나 환경오염 우려가 있는 기피·혐오시설이 내 집 앞마당, 우리 동네 식수원 상류에 들어선다는데 반기며 환영할 주민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방어 본능은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반응이다.

문제의 본질은 시설의 필요성이 아니라 ‘입지의 지정학적 불공정성’에 있다. 대한민국 지방자치 행정이 오랫동안 답습해 온 가장 뼈아픈 맹점 중 하나는 기피시설을 ‘자기 지자체의 가장자리(경계지역)’에 밀어 넣는 관행이다. 세수 증대와 일자리라는 경제적 과실은 인허가를 낸 지자체가 독식하고, 냄새와 수질 오염, 지가 하락이라는 환경적 비용은 경계선 너머 이웃 지자체 주민들이 고스란히 짊어지는 기형적 구조다. 이 구조가 깨지지 않는 한, 님비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일방적 희생에 대한 정당한 저항’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특히 태백과 삼척은 행정구역의 얇은 선으로 나뉘어 있을 뿐, 과거 석탄산업의 검은 땀방울을 함께 흘렸고 지금은 산업 전환과 지방소멸이라는 가혹한 벼랑 끝에 나란히 서 있는 한 뿌리이자 단일 생활권이다. 강원랜드 인재개발원 유치 갈등에 이어 이번 양계단지 사태까지, 지자체 간의 이해충돌이 행정 경계를 사이에 두고 격화되는 광경은 폐광지역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소멸의 위기 앞에서 똘똘 뭉쳐 정부를 상대로 목소리를 높여도 모자랄 판에, 이웃의 희생을 딛고 제 살길만 찾겠다는 각자도생은 결국 공멸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그렇다면 이 해묵고도 풀기 어려운 님비의 매듭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첫째, ‘행정구역을 초월한 환경영향 사전 합의제’의 제도화가 절실하다. 현행 지방자치법상 인허가권은 관할 지자체에 귀속되지만, 냄새와 환경오염 물질은 행정 경계선을 인식하지 않는다. 바람길과 수계를 공유하는 인접 지자체 주민과 지자체장의 실질적 동의 없이는 사업을 강행할 수 없도록 광역 차원의 법적·제도적 스크린 장치를 강원특별자치도 특례 등으로 선제 마련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뒤 갈등이 터지면 수습하는 방식은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만 낭비할 뿐이다.

둘째, 이익과 부담을 나누는 ‘초광역 상생 분배 모델’로의 전환이다. 기피시설 입지로 인한 세수입이나 국비 지원금, 사업 시행으로 발생하는 개발 이익의 상당 부분을 인접 피해 지역의 복지와 인프라 개선에 의무적으로 재투자하는 ‘공동기금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덴마크나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풍력발전이나 자원순환시설을 유치할 때, 행정구역을 불문하고 실질적 환경 영향을 받는 반경 내 모든 주민을 시설의 지분 투자자로 참여시켜 전기료 감면이나 배당 수익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님비를 ‘핌피(PIMFY, 제발 우리 마당에)’로 뒤바꿨다.

셋째, 강원 남부 4개 시·군을 아우르는 독립적 ‘광역 상생 거버넌스’의 상설화다. 매번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임시방편식 정치적 타협에 기댈 것이 아니라, 폐광지역 4개 시·군(삼척·태백·정선·영월)과 도청, 중립적인 환경·법률 전문가, 주민 대표가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를 가동해야 한다. 공공시설이나 대규모 민간 사업의 입지 타당성을 권역 전체의 관점에서 사전에 심의하고, 갈등 발생 시 강제력 있는 조정안을 도출해 내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백두대간의 거친 산줄기는 태백과 삼척을 가르는 장벽이 아니라, 두 도시를 수천 년간 한 몸으로 묶어준 탯줄이었다. 내 마당의 깨끗함을 지키기 위해 이웃의 마당에 오물을 던지는 방식으로는 어떤 로컬도 소멸의 파도를 넘어설 수 없다. 지금 건의령 고갯마루에 필요한 것은 일방적 결단과 성난 확성기가 아니다.

“당신의 불편과 희생 위에 세워지는 번영은 없다”는 겸허한 인정, 그리고 행정의 경계를 허물고 고통과 혜택을 함께 나누겠다는 대승적 연대만이 깊게 파인 불신의 골을 메우고 진정한 공존의 길을 여는 유일한 열쇠다.

By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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