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전국의 도심 번화가는 유령과 마녀, 영화 속 캐릭터들로 넘쳐나곤 했다. 켈트족의 고대 축제 삼하인(Samhain)에 뿌리를 둔 서양의 세시풍속 할로윈데이가 언제부터인가 한국 2030 세대의 가장 뜨거운 연례 이벤트로 자리 잡았던 탓이다. 그러나 이태원의 비극 이후 핼러윈을 둘러싼 사회적 공기는 완연히 달라졌다. 차분한 추모와 엄격한 안전 관리 속에서 떠들썩한 상업적 마케팅은 자취를 감췄고, 한때 골목을 가득 메웠던 맹목적 열기 역시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외국의 명절에 불과한 할로윈에 한국의 청년들은 왜 그토록 열광했을까. 단순히 영미권 문화의 무분별한 모방이나 상업주의의 유혹으로만 치부하기엔 그 안에 담긴 청춘들의 심리적 갈증이 너무나 깊다. 입시와 취업, 팍팍한 생존 경쟁과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적 질서 속에서 한국의 청년들은 늘 ‘정답’을 강요받으며 살아간다. 그런 이들에게 할로윈의 코스튬은 하루 동안 나를 옭아맨 사회적 신분과 시선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는 합법적 가면이자, 억눌린 자아를 표출하는 유일무이한 카타르시스의 해방구였던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열광은 우리 사회에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즐기고 발산할 ‘자기 세대의 축제’가 없다는 뼈아픈 반증이기도 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명절인 설과 추석은 가족 중심의 의례와 가사 노동, 세대 갈등의 긴장감이 감도는 엄숙한 자리다. 지자체마다 수백 개씩 열리는 지역 축제들 역시 단체장의 치적을 과시하는 관제 행사나 트로트 무대, 먹거리 장터로 획일화되어 2030 청년들을 단순 구경꾼으로 전락시켰다. 젊음의 에너지를 쏟아낼 공간이 부재한 현실에서, 서양의 외피를 쓴 할로윈은 그 빈자리를 가장 빠르고 자극적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수입된 타국 문화의 공백 뒤에서 진짜 ‘우리만의 청년 축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의 전통문화 속에도 청년들의 해방감을 담아낼 매력적인 자원이 넘쳐난다. 신분과 성별을 숨긴 채 사회를 통렬히 풍자하고 일탈을 누렸던 ‘탈춤’의 유희정신, 짓궂은 장난으로 액운을 쫓고 소원을 빌던 한국 고유의 ‘도깨비’ 설화, 마을의 안녕을 빌며 함께 춤추고 뛰놀던 ‘서낭제’와 ‘대보름 달집태우기’가 바로 그것이다.
영미권의 핼러윈이 ‘유령 코스튬’과 ‘사탕’이라는 단순한 규칙으로 글로벌 IP가 되었듯, 우리 역시 전통의 샤머니즘과 해학을 현대적 팝컬처와 결합할 수 있다. 도깨비 가면을 쓰고 나쁜 기운을 태워버리는 대형 야간 EDM 파티나, 억압된 일상을 해학적으로 풍자하는 K-코스튬플레이 페스티벌 같은 독창적인 한국형 청년 문화는 결코 불가능한 상상이 아니다. 지역의 역사와 청년의 자유로운 감각이 만난다면 관제 축제의 낡은 틀을 깨고 세계인을 매혹할 독창적인 로컬 문화 콘텐츠로 진화할 수도 있다.
축제(Festival)의 어원은 일상의 노동과 질서를 잠시 멈추고 삶을 정화하는 시간에서 출발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상업적 유흥이나 위험천만한 인파의 과밀이 아니라, 위축된 일상을 털어내고 서로의 존재를 안전하게 확인하며 뛰놀 수 있는 온전한 ‘놀이판’이다. 할로윈이라는 낯선 껍데기를 넘어 우리 고유의 서사와 역동성을 품은 새로운 청년 축제가 태어나길 기대한다. 청춘이 맘껏 웃고 숨 쉴 수 있는 마당을 열어주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청년 세대에게 건네야 할 가장 품격 있는 위로이자 환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