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척 시내에 내걸린 현수막 한 장이 눈길을 끈다.
“노인세상 만들지 말고 원전, 방폐장 유치하여 청년이 돌아오는 세상 만들어라!” 현수막 아래에는 ‘갈 곳 없는 청년모임’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표현은 거칠고 요구는 직설적이다. 원전과 방폐장 유치를 해법으로 제시한 주장에는 동의와 반대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작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스스로를 ‘갈 곳 없는 청년’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절박함이다.
도대체 삼척의 청년들은 왜 자신들이 살아가는 도시에서 갈 곳이 없다고 외치는가.
삼척의 인구는 이제 6만 명 선마저 위태롭다. 2026년 9월 말 주민등록인구는 6만 57명이다. 한때 탄광과 시멘트 산업을 기반으로 활력이 넘쳤던 도시는 폐광과 산업구조 변화의 긴 터널을 지나며 지속적으로 인구를 잃었다. 문제는 단순히 인구가 줄어든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층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데 있다.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교육과 문화 환경을 찾아 떠난다. 한 번 떠난 청년이 돌아올 이유는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역에 일자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만한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취업의 기회뿐 아니라 경력을 쌓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까지 갖춰져야 비로소 정착이 가능하다.
그동안 삼척은 인구 6만 명을 지키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대학생 전입을 유도하고, 정주 여건을 개선하며, 각종 인구정책을 추진했다. 그 필요성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주민등록상 숫자를 잠시 끌어올리는 것과 실제로 사람이 머물고 싶어 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해마다 반복되는 인구 방어전이 지역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원전·방폐장 유치 요구는 단순한 에너지시설 유치 주장을 넘어선다. 지역경제의 장기 침체와 일자리 부족에 대한 불만이 그만큼 깊어졌다는 신호로 읽힌다. 물론 원전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 삼척은 이미 2014년 주민 주도로 실시한 원전 유치 찬반투표에서 투표자의 84.97%가 반대 의사를 나타낸 경험이 있다. 지역사회를 갈라놓았던 갈등의 기억도 여전히 남아 있다.
반면 올해 경북 영덕은 신규 대형원전 2기의 후보지로 선정됐다. 인구감소와 지역경제 침체 속에서 대규모 에너지시설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영덕의 선택이 곧 삼척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원전 유치에 따른 경제적 효과와 고용 창출 가능성은 물론 안전과 환경, 지역사회의 수용성까지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무엇보다 대형 시설 하나가 들어선다고 청년들이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중요한 것은 원전을 유치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산업을 통해 청년들이 이곳에서 살아갈 미래를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다.
삼척은 수소와 에너지 전환, 관광과 지역자원 활용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비 규모나 시설 건립 실적만으로 지역경제의 성과를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수백억 원이 투입된 사업이라도 지역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역에 뿌리내리는 기업이 얼마나 늘었는지, 청년들이 실제로 얼마나 취업하고 창업했는지, 그 일자리가 얼마나 지속되는지를 정책의 성적표로 삼아야 한다.
대규모 산업 유치만이 해법도 아니다. 지역의 관광·문화·역사 자원을 활용한 콘텐츠 산업, 소규모 창업과 서비스업, 지역 기업과 대학을 연결하는 산업 생태계 역시 중요하다. 거창한 구호보다 청년 한 사람이 삼척에서 자신의 일을 시작하고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 절실하다.
여기서 행정과 정치권에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숱하게 발표된 인구정책과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은 청년들의 삶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는가. 지역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각종 회의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작 청년들의 목소리는 얼마나 반영됐는가.
이번 현수막의 표현 가운데 ‘노인세상’이라는 말은 아쉽다. 고령층을 청년의 미래와 대립시키는 방식으로는 지역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삼척의 고령화 역시 평생 지역을 지켜온 주민들의 잘못이 아니다. 청년과 노인이 서로 자리를 빼앗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세대가 함께 살아갈 도시의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 본질이다.
그럼에도 현수막에 담긴 절박한 호소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삼척시와 시의회가 먼저 이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원전과 방폐장 유치가 유일한 요구인지, 아니면 그만큼 절실한 일자리와 미래에 대한 호소인지 직접 확인해야 한다. 때로는 거리의 현수막 한 장이 수십 차례의 정책회의보다 지역의 현실을 더 정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인구소멸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치는 재난이 아니다. 청년 한 사람이 떠나고, 가게 하나가 문을 닫고, 학교의 교실 하나가 비어가는 과정이 쌓여 도시의 활력을 서서히 앗아가는 것이다. 지금 삼척에 필요한 것은 인구 6만 명이라는 숫자를 지키기 위한 또 하나의 구호가 아니다. 청년들이 굳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이유, 떠난 청년들이 다시 돌아올 만한 이유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갈 곳 없는 청년’이라는 이름이야말로 지금 삼척이 받아든 가장 뼈아픈 성적표인지도 모른다.
현수막은 일주일도 못 버틴 채 철거됐지만, 거기에 적힌 질문만큼은 오래 남을 것이다. 삼척은 과연 청년들에게 미래가 있는 도시인가.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