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범 500일 만에 생활도민 13만… 10명 중 8명이 수도권 생활인구
  • 보통교부세 산정 반영 등 제도적 안착…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실질 경제 주주’로 품어야
  • 듀얼 라이프·농촌유학·직주결합 주거 생태계와 엮어 ‘오래 머무는 강원’ 완성할 때

가파른 저출생과 청년층 유출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전국 농산어촌 지자체들이 ‘인구소멸’이라는 절체절명의 벼랑 끝에 서 있다. 그동안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부었던 현금성 출산장려금이나 주소지 이전 유도책은 이미 인접 지역 간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제로섬 게임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러한 수세적 방어전의 한계를 뚫고, 최근 강원특별자치도에서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의미 있는 지표가 나왔다. 지난해 5월 첫발을 뗀 ‘강원생활도민 제도’가 시행 500일을 넘어서며 누적 가입자 13만 7천 명을 돌파한 것이다. 이는 도 전체 주민등록인구의 9.1%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로, 100일 차(1만 2천여 명)와 비교하면 무려 11배 이상 급증한 가파른 성장세다.

주목할 대목은 ‘사람의 질과 방향’이다. 강원생활도민 가입자의 약 78%가 수도권 거주자로, 10명 중 8명이 서울·경기·인천에서 강원에 기꺼이 마음을 내어준 외지인들이다. 올해부터 인구감소지역 보통교부세 산정 지표에 생활인구(체류인구)가 공식 반영되면서, 이들이 강원을 찾아 머물고 소비하는 발걸음 하나하나는 지자체의 기초 재정을 지탱하는 든든한 방파제로 직결되고 있다.

실제로 행정안전부 집계에 따르면 도내 인구감소지역 체류인구는 등록인구의 6.1배로 전국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다. 주소지만 묶어두는 닫힌 행정에서 벗어나, 지역을 드나들며 활력을 불어넣는 ‘생활인구 경제학’의 효용이 통계와 재정으로 증명된 셈이다.

하지만 13만 명이라는 숫자에 취해 자위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 잠자는 모바일 도민증이나, 추석 명절과 단풍철 맞이 모바일 상품권 페이백 같은 단발성 소비 유인책만으로는 ‘진짜 관계’를 담보하기 어렵다. 외지인이 강원을 ‘잠깐 스쳐 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주기적으로 머물며 일상을 영위하는 제2의 고향’으로 느끼게 만드는 획기적인 제도적 진화가 뒤따라야 한다.

첫째, 생활도민을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지역의 ‘실질 주주’로 예우하는 복지·행정 권리의 확장이 필요하다. 정선군이 고향사랑기부제와 연계해 군민과 동일한 관광·교통 할인 혜택을 주는 ‘와와패스’나 공영버스 무료화 모델처럼, 생활도민에게도 공공 문화·체육 인프라와 공유 오피스 이용 권한을 폭넓게 개방해야 한다. 주말마다 짐을 싸서 내려오는 ‘5도 2촌’과 ‘듀얼 라이프(Dual Life)’족들이 심리적·물리적 문턱 없이 정착할 수 있도록 행정적 울타리를 허물어주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둘째, 지역의 주거·교육 인프라와 입체적으로 엮어내는 체류 생태계의 고도화다. 2026학년도 2학기 유학 연장률 96.8%를 기록하며 학생과 학부모 315명을 안착시킨 영월군의 ‘농촌유학’ 모델이나, 방치된 농가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빈집 리모델링 지원사업’, 단지 내 공유오피스를 결합한 도의 청년 ‘청(정)청(년)스테이’ 정책 등과 생활도민망을 긴밀하게 연동해야 한다. 생활도민으로 시작된 작은 호기심이 농촌유학과 세컨드 하우스 장기 임대로 이어지고, 나아가 귀농·귀촌이나 로컬 창업이라는 완전한 정착으로 연결되는 징검다리를 놓아주어야 한다.

‘주민등록’이라는 낡은 장부의 숫자에만 갇혀 있으면 지방은 소멸을 피할 수 없다. 지역의 미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 땅에 주소를 두고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 지역을 아끼고, 자주 찾으며, 함께 살아 숨 쉬는가에 달려 있다.

13만 7천 명의 강원생활도민은 강원특별자치도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잠재 자산이자 우군이다. 이들에게 단순한 방문 할인 쿠폰을 쥐여주는 것을 넘어, 강원의 숲과 바다, 그리고 삶의 터전을 함께 일구는 당당한 주체로 설 자리를 내어줄 때다. 관계와 체류의 힘으로 빚어낼 ‘오래 머물고 싶은 강원’의 담대한 실험은 이제 막 진짜 시험대에 올랐다.

By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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