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넘기다 문득 다가온 추석 연휴를 마주하며 설렘보다 깊은 한숨이 먼저 나오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장보기가 겁나는 과일값과 제수용품 물가, 여전히 팍팍한 살림살이는 명절이라는 단어가 주는 넉넉함을 무색하게 만든다. 어디 경제뿐인가. 뉴스를 틀면 끝없이 이어지는 정치권의 진영 싸움과 반목, 세대와 지역으로 쪼개진 사회적 갈등에 피로감은 극에 달해 있다. 명절 밥상머리에서조차 시사나 정치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된 지 오래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거대한 ‘각자도생’의 정글이 되어버렸다. 청년들은 불투명한 일자리와 치솟는 주거비 앞에서 미래를 설계하지 못한 채 고립을 택하고, 중장년은 짊어진 가족의 무게와 노후 불안에 허덕이며, 노년은 빠르게 다가온 초고령화의 그늘 속에서 쓸쓸함을 견딘다. 풍요와 나눔의 상징이어야 할 한가위가 어떤 이들에게는 가족 간의 비교와 상처, 소외감을 확인하는 가장 버거운 시간으로 다가오는 서글픈 현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다시 명절을 기다리고, 꽉 막힌 도로를 뚫고 고향으로, 가족의 곁으로 향하는가.
그것은 이 차갑고 거친 세상 속에서 우리를 지탱해 주는 마지막 온기가 바로 ‘사람의 연결’에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정치적 신념이 다르고, 경제적 형편의 격차가 벌어지고, 세대 간 생각의 간극이 아득할지라도 한 지붕 아래 모여 둘러앉은 밥상 위에서 오가는 투박한 안부 한마디에는 설명하기 힘든 치유의 힘이 있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냐”, “요즘 건강은 어떠냐”는 거친 손맛 같은 물음이야말로 알고리즘과 계산된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결코 잃어버려선 안 될 가장 원초적인 연대다.
명절의 본질은 화려한 제사상이나 값비싼 선물 세트에 있지 않다. 그것은 서로의 결핍을 탓하지 않고 보듬어 안는 ‘포용’이며, 굽이치는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함께 숨을 고르는 ‘쉼’이다.
이번 추석에는 잘잘못을 따지는 날 선 논쟁 대신 묵묵히 버텨온 서로의 지난 계절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너그러운 말이 오갔으면 한다. 이웃 지자체 간의 갈등이든, 사회적 대립이든, 결국 모든 상생의 출발점은 “당신의 삶도 나와 다르지 않게 고단했겠구나”라는 역지사지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어두운 밤하늘을 차별 없이 골고루 비추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하루를 견뎌낸 평범한 시민들 모두의 가슴속에 온전한 위로와 평안이 깃들기를 소망한다. 각자도생의 벼랑 끝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밥 한 끼, 그것이야말로 2026년 오늘, 명절이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고 소중한 이유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