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청년 모임서 출발… 10주년 맞이한 대표 시민 독립영화 축제
- 한국관광공사 옥상 등 유휴 도심 공간 재발견, 무료 상영과 ‘영.사.다.방.’ 토크 호평
- ‘강원단편선’ 중심 로컬 창작자 육성 산실… 문화 소외 해소 넘어 도시 재생 모델로 주목
[로컬라인=원주]
늦여름 저녁, 선선해진 바람이 도심 빌딩 숲 사이를 스치면 원주의 옥상은 거대한 야외 극장으로 탈바꿈한다. 어스름이 깔린 하늘 아래 삼삼오오 돗자리를 펴고 앉은 관객들 위로 영사기 불빛이 환하게 쏟아진다. 상업영화관의 밀폐된 좌석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도시의 야경과 스크린 속 이야기가 절묘하게 겹쳐지는 순간이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며 지역 대표 여름 문화축제로 확고히 자리 잡은 ‘원주옥상영화제(Wonju Rooftop Film Festival)’가 도심의 잊힌 유휴 공간을 살아 숨 쉬는 문화 플랫폼으로 재탄생시키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원주옥상영화제의 뿌리는 지난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립·예술영화를 접할 기회가 턱없이 부족했던 척박한 지역 문화 현실 속에서 원주영상미디어센터를 기반으로 모인 지역 청년 활동가들이 “우리가 보고 싶은 영화를 직접 틀어보자”며 의기투합한 것이 시초였다. 특별한 상영 인프라가 없던 이들이 눈을 돌린 곳은 바로 방치되다시피 했던 도심 건물의 ‘옥상’이었다.
미디어센터 옥상에서 작은 프로젝트 빔으로 소박하게 시작한 영화제는 해를 거듭하며 혁신도시 내 한국관광공사 본사 옥상, 남산골문화센터 진달래관 등 매년 새로운 도시 공간을 무대로 확장됐다. ‘여름의 끝, 달의 극장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펼쳐지는 영화제는 시민 누구나 부담 없이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전편 무료 상영’ 원칙을 10년째 지켜오고 있다.
상영 프로그램 역시 내실을 더해왔다. 강원 지역 영화인들의 치열한 시선을 담은 ‘강원단편선’을 비롯해 국내외 수작을 모은 ‘옥상단편’, 깊은 울림을 전하는 ‘옥상장편’, 밤을 지새우며 영화적 열기를 나누는 ‘모두밤샘섹션’까지 다채롭다. 특히 영화 상영 직후 감독과 관객이 둘러앉아 제작 비하인드와 영화의 메시지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관객과의 대화(GV) ‘영.사.다.방.(영화 사랑하는 사람들의 다정한 밤)’은 원주옥상영화제만의 독보적인 시그니처 커뮤니티 프로그램이다.
원주옥상영화제가 지난 10년간 남긴 족적은 단순한 여름철 문화 행사의 성공을 훌쩍 뛰어넘는다. 행정이 주도하는 하향식(Top-down) 축제가 관성화와 예산 낭비의 덫에 빠지기 쉬운 반면, 원주옥상영화제는 지역 청년들의 자발적인 열망과 시민 프로그래머들의 참여가 결합한 상향식(Bottom-up) 문화 자치의 훌륭한 본보기를 보여준다. 특히 ‘옥상’이라는 일상적·유휴 공간의 미학적 재발견은 원도심 공동화와 문화적 갈증을 겪는 강원도 내 여러 시·군에 유의미한 도시 재생 인사이트를 던져준다. 폐광지역이나 구도심의 유휴 자산도 시민의 아이디어와 결합하면 언제든 가장 트렌디한 문화 거점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영화제를 찾은 한 시민은 “답답한 실내를 벗어나 도시 야경과 밤하늘을 배경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 자체가 일상의 큰 위로이자 색다른 낭만”이라며 “청년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10년 동안 이 멋진 자리를 지켜와 준 덕분에 원주라는 도시가 훨씬 살기 좋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고 소감을 전했다.
거대한 자본이나 대규모 행사장에 기대지 않고도, 지역을 아끼는 청년들의 진정성과 시민들의 애정 어린 발걸음으로 10년의 역사를 써 내려간 원주옥상영화제. 밤하늘과 맞닿은 옥상 위 스크린은 오늘도 지역 문화의 경계를 허물며 도시의 밤을 한층 따뜻하고 풍요롭게 물들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