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헌 /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고향 사북은 해발 650m 산기슭에 자리한 작은 탄광촌이었다. 거리를 뒹구는 검은 탄가루 속에서도 이웃 간의 끈끈한 정과 사람 사는 온기가 가득했던 곳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해 치열했던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50대 초반이 되어 다시 돌아온 고향 정선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폐광의 아픔을 딛고 우뚝 선 강원랜드와 하이원리조트는 이제 우리 지역을 상징하는 거대한 랜드마크가 되었다.

귀향객이자 지역 주민의 시선으로 바라본 강원랜드는 지역 사회를 지탱하는 든든한 경제적 버팀목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주민들이 체감하는 감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합적이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웅장한 건물 이면에는 ‘카지노’라는 산업 특성상 피할 수 없는 도박 중독 등의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늘 그림자처럼 맴돈다. 내 고향이 외부인들에게 ‘일확천금을 노리는 도박 도시’로만 비치는 것에 대한 씁쓸함, 그리고 거대한 자본이 유입되었음에도 정작 골목 상권의 영세한 주민들은 여전히 소외감을 느끼는 현실은 우리가 풀어야 할 무거운 숙제다.

이런 시점에 올초 강원랜드가 발표한 ‘K-HIT 프로젝트’는 확실히 눈여겨볼 만한 전환점이다. 비카지노 부문 매출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리고, 초대형 실내 엔터테인먼트 공간인 ‘그랜드코어존’ 등을 조성해 글로벌 K-복합리조트로 도약하겠다는 야심 찬 청사진이다. 그동안 늘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던 ‘카지노 의존도 탈피’라는 원론적 구호를 넘어, 수조 원 규모의 과감한 투자로 계절적 한계를 극복하고 온 가족 체류형 공간을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시도는 무척 반갑다.

하지만 이 원대한 계획이 단순한 구호나 화려한 ‘유리성’에 그치지 않으려면 리더십의 본질적인 변화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동안 강원랜드는 공기업이라는 특성 탓에, 카지노나 글로벌 호스피탈리티 산업에 대한 전문성과는 무관하게 정치적 배경을 업고 내려오는 소위 ‘낙하산 인사’들이 수장을 맡는 경우가 잦았다. 수조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K-HIT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오사카 등 주변국 복합리조트들과 진검승부를 벌이기 위해서는, 정권의 전리품 챙기기식 인사가 아니라 글로벌 레저 산업의 트렌드를 꿰뚫어 보는 ‘전문 경영인’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주민들은 임기 채우기에 급급한 정객(政客)이 아니라, 척박한 폐광지역의 애환을 이해하고 강원랜드의 100년 대계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진짜 전문가를 원한다.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위해 지역 주민으로서 몇 가지 제언을 덧붙이고 싶다.

첫째, 천혜의 자연을 활용한 ‘글로벌 웰니스 리조트’로의 도약이다. 최근 하이원리조트가 해발 800m 고원에 인피니티풀 ‘블루스카이’를 새롭게 조성한 것은 사계절 체류형 복합리조트로 나아가기 위한 훌륭한 시도다. 백두대간의 맑은 공기와 숲을 활용한 산림 치유 프로그램, 워터월드와 동물농장 등 가족 단위 관광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 비카지노 레저 인프라에 더욱 과감하게 투자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

둘째, 지역사회와의 진정한 ‘상생 생태계’ 구축이다. 단순히 이익금의 일부를 지역에 환원하거나 일회성 지원금을 배분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강원랜드라는 거대한 플랫폼 안에 지역의 청년 창업가, 로컬 푸드, 문화 예술인들이 자생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내어주어야 한다. 지역의 향토 자원이 강원랜드의 프리미엄 서비스와 결합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동반 성장이 가능해질 것이다.

과거 사북을 먹여 살린 것이 지하 막장의 검은 석탄이었다면, 미래의 사북과 정선을 살릴 원동력은 강원랜드가 만들어갈 푸른 웰니스 환경과 글로벌 리조트로서의 품격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한 중년의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훗날 우리 강원랜드가 ‘카지노’라는 단어보다 ‘대한민국 최고의 힐링과 레저의 성지’로 전 세계인들의 뇌리에 각인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강원랜드는 지역 주민 모두가 떳떳하게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진정한 향토 기업으로 완성될 것이다.

※ 외부 컬럼, 기고문 등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By Editor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