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십천 굽이치는 절벽 위, 자연과 인공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관동 제1경
-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온 문인들의 쉼터, 2023년 12월 ‘국보’ 승격의 쾌거
- 삽화로 만나는 옛 선비들의 풍류와 벼랑 위 누각의 비경
[로컬라인=삼척]
눈이 시리도록 푸른 동해 바다를 품은 삼척. 하지만 삼척의 진짜 매력은 바다를 등지고 내륙으로 조금 걸어 들어왔을 때 비로소 굽이치며 모습을 드러낸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오십천의 맑은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아찔한 기암절벽 위에 새 한 마리가 사뿐히 내려앉은 듯한 거대한 누각과 마주치게 된다.
바로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제1경으로 꼽히는 ‘죽서루(竹西樓)’다.

[삽화 설명] 맑은 강물(오십천)이 굽이쳐 흐르는 거대한 기암절벽 위, 울창한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당당하게 서 있는 조선 시대 전통 누각(죽서루)의 고즈넉한 풍경. 그 아래로 옛 선비들이 나룻배를 띄워 풍류를 즐기고 있다. (일러스트=로컬라인 AI)
자연이 내어준 주춧돌, 계산된 불완전함의 미학
죽서루에 오르기 전, 누각의 밑동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 건물이 왜 한국 전통 건축의 백미(白眉)로 불리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보통의 건물이라면 평평하게 땅을 다지고 똑같은 길이의 주춧돌을 세웠겠지만, 죽서루는 달랐다.
울퉁불퉁한 자연 암반을 전혀 깎아내지 않고, 바위의 높낮이에 맞춰 기둥의 길이를 저마다 다르게 깎아 세우는 ‘그랭이 기법’을 사용했다. 17개의 기둥 중 9개는 자연 암반 위에, 8개는 다듬은 주춧돌 위에 올려져 있다. 자연을 훼손하거나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자연의 일부로 스며들기를 택한 옛 목수들의 겸손하고도 경이로운 지혜다.
벼랑 끝에서 시(詩)가 피어나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2세기 고려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金克己)가 죽서루에 올라 지은 시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그 역사는 천 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간다.
문과 벽을 두지 않고 사방을 시원하게 틔워낸 죽서루 마루에 앉으면, 발아래로는 오십천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고 고개를 들면 태백산맥의 웅장한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완벽한 풍광에 매료된 송강 정철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곳에 머물며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다. 누각 곳곳에 빼곡하게 걸려 있는 현판들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들이 남긴 일종의 ‘방명록’인 셈이다.
60년의 기다림, 마침내 ‘국보’로 피어오르다
이처럼 탁월한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지닌 죽서루는 지난 2023년 12월, 마침내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승격되는 쾌거를 안았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지 무려 60년 만의 일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탄생한 첫 번째 국보이자, 관동팔경 중 유일한 국보 문화재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 로컬라인 스토리 인사이트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닙니다. 죽서루는 자연을 대하는 우리 선조들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거대한 예술 작품입니다. 삼척시는 국보 승격을 기념하여 야간 조명 연출, 전통 공연, 문화유산 야행 등 죽서루를 살아 숨 쉬는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있습니다. 2026년 오늘, 국보의 품격을 입은 죽서루의 마루에 걸터앉아 수백 년 전 선비들이 느꼈을 벅찬 감동을 고스란히 건네받아 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저녁, 선선한 강바람을 맞으며 죽서루 주변을 산책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절벽 위를 묵묵히 지켜온 600년의 세월이, 바쁜 현대인들에게 조용하고 묵직한 위로를 건넬 것이다.
[여행 정보]
-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죽서루길 37
- 관람 시간: 하절기(3월~10월) 09:00~18:00 / 동절기(11월~2월) 09:00~17:00 (입장료 무료)
- 주변 명소: 삼척부 관아 유적지, 성내동 성당, 장미공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