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라인= 데스크칼럼]
우리는 빵이 아니라 ‘이야기’를 산다
민음사빵·리센느빵 열풍을 사회·경제·문화의 세 겹으로 읽다
요즘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의 첫마디가 달라졌다. “그 빵, 들어왔어요?” 이름도 묻지 않는다. 다 안다는 표정이다. 서울 직장인은 연차를 내고 편의점을 돌고, 지방 소도시 학생은 재고 조회 앱을 새로 고친다. 한 개 3천 원 남짓한 빵 하나가 전국을 들썩이게 만든 것이다.
주인공은 둘이다. GS25가 출판사 민음사와 손잡고 8월 21일 내놓은 ‘민음사빵’, 그리고 CU가 걸그룹 리센느와 함께 9월 17일부터 차례로 출시한 ‘리센느빵’. 민음사빵은 출시 약 한 달 만인 9월 22일 기준 누적 141만 개가 팔렸고, 리센느빵 5종은 10월 1일까지 60만 개를 넘겼다. 빵 맛이 갑자기 좋아져서일까. 아니다. 사람들이 지갑을 연 진짜 이유는 봉지 안에 무작위로 든 책갈피 한 장, 포토카드 한 장이다.

표를 놓고 보면 공통점이 선명하다. 빵은 거들 뿐, 주인공은 모으는 재미다. 그런데 차이도 있다. 포켓몬빵이 ‘어린 시절’이라는 과거를 팔았다면, 민음사빵과 리센느빵은 ‘지금의 나’를 판다. 바로 이 지점에서 2026년 가을의 품절 대란은 4년 전과 결이 다르다.
■ 사회학적 관찰 —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를 3천 원에 산다
민음사빵 열풍의 바탕에는 ‘텍스트힙’이 있다. 글자(text)와 멋(hip)을 합친 신조어로, 책 읽는 모습을 멋으로 여기는 흐름이다. 역설적인 대목은 국민 독서율이 낮아지는 와중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책을 다 읽지 못해도 『오만과 편견』 책갈피를 가방에 꽂고 SNS에 올린다. 그것은 독서라기보다 “나는 문학을 아는 사람”이라는 자기소개다.
리센느빵은 다른 방향에서 같은 욕구를 드러낸다. 구매자의 약 70%가 남성, 그중 30대 남성이 가장 많았다. 콘서트 티켓이나 고가 앨범이 부담스러운 직장인 팬에게 퇴근길 편의점 빵은 가장 손쉬운 ‘응원 인증’이다. 두 빵 모두 결국 소속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표식을 판 셈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고 오프라인 공동체가 옅어질수록, 사람들은 이런 작은 표식으로 ‘우리’를 확인한다.
■ 경제학적 관찰 — 큰 사치는 못 해도 작은 확률에는 건다
경제의 눈으로 보면 이 현상은 ‘가격은 낮고, 만족은 크고, 결과는 모르는’ 소비다. 기준금리가 연 3%대로 다시 올라서고 장바구니 물가가 무거운 시기, 수십만 원짜리 명품 대신 3천 원으로 기분을 사는 이른바 ‘작은 사치’가 힘을 얻는다. 여기에 무작위 동봉이라는 장치가 붙는다. 원하는 책갈피나 포토카드가 나올 때까지 사게 만드는, 일종의 ‘뽑기’ 구조다. 같은 사람이 같은 빵을 서너 개씩 사 가는 이유다.
유통업계 입장에서도 계산이 맞는다. 빵은 원래 ‘지나가다 집는’ 상품인데, 굿즈가 붙으면 일부러 매장을 찾아오는 ‘목적 구매’로 바뀐다. GS25 자사 앱 가입자가 민음사빵 이후 2.5배로 늘었고, CU의 협업 빵 매출은 올해 1~8월에도 전년보다 30.9% 늘어 일반 차별화 빵(14.8%)보다 두 배 빠르게 컸다. 빵 하나가 손님과 앱 회원을 함께 데려오는 ‘미끼 상품’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만 그늘도 있다. 중고 시장에서 인기 굿즈가 정가의 몇 배에 거래되면, 소비는 즐거움이 아니라 ‘손해 보지 않으려는 경쟁’이 된다. 물량 조절에 실패해 품절이 반복되면 피로감이 쌓이고, 굿즈만 챙기고 버려지는 빵은 음식물 쓰레기 문제로 이어진다.
■ 문화적 관찰 — 편의점이 서점이 되고, 공연장이 된다
문화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공간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문학은 서점에, 아이돌은 공연장에 있던 것이 이제는 편의점 빵 매대에 함께 놓인다. 영풍문고가 뷔페와 손잡고 소설 속 음식을 메뉴로 내놓는 등, 출판·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먹거리로 흘러드는 흐름은 이미 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이것을 ‘문학의 상품화’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르게 볼 여지도 있다. 책갈피 한 장 때문에『사랑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처음 들어본 누군가가 언젠가 그 책을 펼칠 수도 있다. 굿즈는 콘텐츠로 들어가는 ‘입구’가 될 수도, 콘텐츠를 대신하는 ‘껍데기’로 끝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될지는 유행이 지나간 뒤 남는 것이 무엇이냐에 달려 있다.
유행은 빠르다. 민음사빵을 기획한 담당자조차 한 달 만에 끝나는 상품이 많다고 말했다. 이번 열풍도 언젠가 식을 것이다. 다만 빵 봉지를 뜯으며 설레던 그 마음, 이야기 한 조각을 손에 쥐고 싶었던 그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마음을 오래 붙잡는 쪽은 더 좋은 이야기를 가진 쪽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