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해상강국 실직국서 출발… 신라 경덕왕 때 ‘삼척(三陟)’으로 천년 역사 이어와
- 오십천 굽이치는 천혜의 요충지, 북방 진출과 동해 제해권 장악한 해양 개척의 관문
- 음차의 흔적 너머 ‘산과 바다를 딛고 일어선 땅’… 천년의 자부심 오늘로 이어져
[로컬라인=삼척]
푸른 동해 바다가 장엄하게 부서지고 내륙으로는 웅장한 백두대간이 병풍처럼 둘러선 고장, 삼척(三陟). 오늘날 우리가 무심코 부르는 ‘삼척’이라는 두 글자 속에는 2천 년 전 한반도 동해안을 호령했던 고대 해상왕국의 숨결과 험준한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일궈낸 선조들의 당당한 기상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삼척 지명의 기원은 기원전후 동해안 일대에 웅거했던 고대 진한의 소국 ‘실직국(悉直國)’에서 시작된다. 고대 문헌과 삼국사기에 따르면 실직국은 동해의 풍부한 해양 자원과 비옥한 오십천 유역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떨쳤던 해상 강국이었다. 이후 고구려와 신라의 치열한 각축전 속에서 신라 지증왕 6년(서기 505년), 신라는 이곳에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초대 군주로 그 유명한 이사부(異斯夫) 장군을 파견했다.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역사로 편입시킨 동해 제해권 확보의 전진기지가 바로 이곳 실직이었다.

[삽화 설명] 바다의 푸른 파도와 오십천 벼랑을 품고 해상 강국으로 뻗어나간 고대 ‘실직국’과 신라 이사부의 당당한 해양 개척사를 담았다.
오늘날의 ‘삼척’이라는 한자 표기가 행정구역명으로 공식 등장한 것은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년)의 일이다. 신라의 대대적인 한화(漢化) 정책에 따라 실직주는 삼척군으로 개칭됐다. 언어학적으로는 ‘실직’ 혹은 ‘사직(史直)’이라는 고유 지명의 음운이 세월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삼척’으로 정착된 것으로 본다. 여기에 험준한 산세를 딛고 올라선다는 뜻의 ‘오를 척(陟)’ 자가 결합하면서, 거친 파도와 가파른 산간 지형을 개척하며 살아온 지역민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대변하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삼척이라는 지명은 단순한 행정구역의 구분을 넘어, 대륙과 해양이 맞부딪히는 관문에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켜온 해양 개척사의 증표다. 1995년 시·군 통합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삼척은 ‘실직’이라는 찬란한 고대사의 뿌리를 잊지 않고 계승해 왔다. 유서 깊은 지명의 무게를 현대적인 문화 자산과 해양 관광, 그리고 미래 에너지 산업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키는 일이야말로 천년 고도 삼척이 나아갈 미래의 나침반이다.
오늘 죽서루 절벽 아래 굽이쳐 흐르는 오십천을 바라본다면, 그 물길 끝에서 실직국의 깃발을 높이 들고 바다로 나아갔던 옛사람들의 웅대한 고동 소리를 떠올려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