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려 내생현서 고려 의종 때 ‘영월(寧越)’로… 860년 세월 품은 유서 깊은 땅
- ‘편안할 영(寧)·넘을 월(越)’… 첩첩산중과 거친 강 건너는 나그네의 무탈함 기원
- 단종의 애달픈 역사 품고 지붕 없는 박물관 도시이자 ‘체류형 힐링 도시’로 우뚝
[로컬라인=영월]
동강과 서강이 태극 문양을 그리며 감싸 안고, 깎아지른 석회암 기암절벽이 비경을 이루는 곳, 영월(寧越). 단종의 애달픈 한이 서린 청령포와 장릉으로 널리 알려진 이 도시는 그 이름에서부터 묵직한 위로와 평온함을 건넨다. 거친 자연을 마주하며 길을 떠났던 수많은 나그네와 주민들의 간절한 기원이 ‘영월’이라는 두 글자 속에 고요히 흐르고 있다.
삼국시대 영월은 고구려의 ‘내생현(奈生縣)’이었다. 신라 경덕왕 때 ‘내령현(奈靈縣)’으로 고쳐진 후, 고려 의종 21년(1167년)에 이르러 비로소 오늘날의 이름인 ‘영월(寧越)’로 개칭되어 군(郡)으로 승격됐다. 무려 860여 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지명이다.

[삽화설명] 동강과 서강의 험준한 물줄기와 가파른 고갯길을 오가던 길손들이 “부디 편안하고 무탈하게 넘어가길(寧越)” 바랐던 배려와 안녕의 염원을 담았다.
‘편안할 영(寧)’에 ‘넘을 월(越)’을 쓰는 영월의 지명 유래는 지극히 지리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배려를 담고 있다. 과거 영월은 높은 산맥들이 겹겹이 가로막고, 깊고 험한 서강과 동강 물줄기가 휘돌아 나가 나룻배나 험준한 고갯길이 아니면 쉽게 닿을 수 없는 천혜의 오지였다. 이에 선조들은 이 험한 벼랑과 거친 고개를 넘나드는 모든 이들이 “부디 아무 탈 없이 무사하고 편안하게 넘어가기를(寧越)”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고을의 이름을 붙였다. 험로를 경계하는 두려움을 타인에 대한 따뜻한 축복으로 바꾸어낸 인문적 지혜다.
영월이라는 지명은 비운의 소년 왕 단종이 걸어야 했던 눈물의 유배길과도 겹쳐지며 짙은 서사적 울림을 준다. 하지만 오늘날 영월의 ‘편안히 넘나든다’는 의미는 고립의 상징을 넘어, 도시민들이 언제든 찾아와 번잡한 일상을 내려놓고 영혼을 쉬어가는 ‘관계와 힐링의 플랫폼’으로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다. 험준했던 산과 강이 최고의 생태·문화 자원이 되어 외지인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영월의 포용력은 이미 그 지명 속에 예견되어 있던 셈이다.
선돌 절벽 위에서 붉게 물드는 석양을 바라보며 저 아래 굽이치는 서강 물줄기를 내려다보라. 고단했던 삶의 고개를 편안하게 넘겨주는 영월의 다정한 위로가 가슴속 깊은 곳까지 잔잔하게 번져올 것이다.
